[편집국에서] 방역을 방해하는 건 누구인가 / 오승훈 - 한겨레
오승훈
전국1팀장
7일 대구 달서구 성당동 한마음아파트의 코로나19 확진자 46명 전원이 신천지 교인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대구시민들은 또다시 큰 충격에 빠졌다. 며칠 새 확진자 증가율이 다소 꺾이는 추세에 안도하던 대구시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아파트가 통째로 집단 격리된 사상 초유의 사태는, 신천지 교인에 대한 광범위한 진단검사의 필요성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 아파트 입주민 중 94명(66%)이 신천지 교인인 까닭에 추가 확진자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신천지가 제출한 신도 명단만으로는 효과적인 ‘방역 작업’을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 집단 감염 사태로 거듭 확인됐다. 아파트 내 집단 감염을 이상하게 여긴 보건당국이 지난 4일 입주민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할 때까지 대구시는 이 아파트에 신천지 교인이 집단적으로 거주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구시가 신천지 쪽에서 제출받은 교인 정보가 불명확한 데서 벌어진 일이었다. 압수수색을 통해 제때 신천지 교인들의 온전한 인적 정보를 확보했더라면 한마음아파트 같은 신천지 집단 주거시설에 대해 선제적 조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언론 보도가 나고서야 집단 격리 사실을 뒤늦게 발표한 대구시의 대응도 석연치 않다. 7일 권영진 대구시장이 신천지 교인들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대구 여론은 싸늘하다. 애초부터 신천지 쪽의 협조를 확실히 받아내든지 아니면 강제수사로 방향을 잡았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실패해버린 형국이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비협조적인 신천지 신도들을 찾느라 온 행정력을 동원하던 대구시 입장에선 억울할 듯도 싶다. 3차례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신천지 쪽으로부터 추가 명단을 제출받는 골탕을 먹으면서도 8일 현재까지 대구시는 신천지 교인 명단의 95%에 대한 검체 검사를 마쳤다. 신천지 쪽의 행위는 누구든지 질병관리본부장과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실시하는 역학조사에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를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대구에서 국내 첫 아파트 대상의 코호트 격리가 시행됐다. 130여가구가 사는 것으로 전해진 이 아파트에선 지금까지 46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연합뉴스
문제는 한마음아파트처럼 기존 명단으로는 알 수 없는 교인들의 존재다. 제2, 제3의 한마음아파트가 나올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이다. 대구시는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거주지와 관련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형편이다.
대구에서 또다시 신천지 집단 감염 사태가 빚어지게 된 1차적 책임은 물론 신천지 쪽에 있지만, 명단과 시설 누락 등 신천지의 비협조가 빈번한데도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두 차례나 반려한 검찰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5일 보다 못한 권 시장이 거듭 강제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대구지검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압수수색을 찬성한 86%(대구·경북지역 주민의 95.8%)의 국민 여론이 신천지 탄압을 원하는 건 아닐 터다. 국민들은 보건당국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방역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검찰의 말처럼 강제수사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맞으려면 검찰의 유례없는 신중함이 신천지 쪽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 결과적으로 차질 없는 방역으로 이어졌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이번 집단 감염 사태는 신천지의 선의에 기댄 방역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다. 만약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지난해, 수십차례의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일 때마다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해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검찰이 국민에게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신들의 권한 행사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만은 지적해야겠다. 하물며 이 사안은 표창장 위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시민 생명과 공공 안전이 달린 문제다. 방역을 방해하는 건 신천지만이 아니다.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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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8 09:23:3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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