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앉은 저의 눈높이는 남들보다 늘 낮은 위치에 머뭅니다. 국민을 대하는 정치의 위치가 저는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년 12월 26일, 더불어민주당의 '영재영입' 1호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한 입당의 변 중 일부다. 정치 입문 첫날 최 교수가 내놓은 이 일성은 분명 감동적이었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최 교수는 왜 민주당을 선택했을까. 최근 <한겨레21>과 인터뷰한 최 교수는 지난 1일 민주당 신년행사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의도 당사에서 단배식(신년행사)을 마치고 (서울) 동작구에 있는 현충원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현충원 참배에 이어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가야 하는 일정이 빠듯했다. 한 당직자가 현충원 일정부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했다. 일종의 배려인 셈이었다. 그때 한 다선 의원이 나서서 그렇게 하지 말자, 힘들어도 같이 가자고 했다. 장애인들은 어떤 상황을 원할까?"
이러한 최 교수의 반문은 의미심장했다.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일방적인 배려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가야하는 한국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염두에 둔 민주당 '인재영입 1호'이자 척수장애인 정치인 초년생의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민주당 사람들이 현충원 계단을 걸어 오르는 대신 나와 함께 경사로로 이동하는 순간 '아, 내가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에 뭉클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렇게 이해찬 대표 등이 참석한 민주당 신년행사에서 확인한 면모를 통해 여당인 민주당의 인재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최근 논란을 자처한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장애인 관련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할까. 단순히 '설화'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이해찬의 무의식과 인식
"그런 말을 자주한 것은 아니고, 지난 번에도 무의식적으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무의식간에 한 것이기 때문에 더 말씀드릴 건 아닌 것 같다."
"자꾸 (장애인 비하발언) 말씀을 하는데,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다."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 나선 이해찬 대표가 연거푸 쏟아지는 관련 질문에 대해 한 발언이다(관련 기사 : 이해찬 장애인 비하 '반쪽 해명' "지난번에도 무의식적으로...") "어느 한 쪽을 낮게 보고 한 말은 아니다"라며 거듭 '사과'와 '해명'에 나섰지만, 마지막 발언만 놓고 보면 '일축'이란 표현도 과하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일축은 총선을 석 달 앞둔 여당 대표로서 더 이상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한 '의도'로 풀이된다. 또 전날 낸 입장문에서 이 대표는 거듭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용 자체가 많은 장애인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부적절한 말", "장애인 여러분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해명에 나선 바 있다.
논란이 된 발언 자체도 '인재영입 1호'인 최 교수를 쉽게 말해 '띄어주려던'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날(15일) 이 대표가 '2020 신년기획: 청년과의 대화'란 주제로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TV'과의 인터뷰에서 한 논란의 발언을 보자.
"나도 몰랐는데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데요.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그런데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지 않나. 그래서 그분들이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를 심리학자한테도 들었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은 최 교수를 두고 "그렇게 의지도 강하면서 또 선하더라"며 "역경을 이겨냈다"고 칭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하지만 논란을 부추긴 건 다름 아닌 이 대표의 '입'이었다. 작년 연말 보수야당이 일제히 "사퇴 촉구"를 요구하고 나섰던 바로 그 발언 말이다.
언론과 보수야당이 작년 12월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 행사 자리에서 이 대표가 "정치권에 저 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정신장애인이 많이 있다",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라고 한 발언으로 논란을 자처했던 과거를 그냥 넘길 리 만무했다. 이 대표나 공식 유튜브에서 한 발언을 걸러내지 못한 민주당 내부의 인권 감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같은 이 대표의 해명을 두고 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위위원장은 16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별을 한 사람이 되레 차별을 받은 사람을 책망하는 꼴"이라며 "자기 발언에는 문제가 없는데 사람들이 괜히 상처를 받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죄송하다'는 말은 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진정성 있는 사과일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아래와 같이 꼬집었다.
장 위원장은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 비장애인 본인의 삶을 다룬 다큐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다. 전날 장 위원장과 정의당이 내놓은 비판이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 대표의 입장문을 두고 "문제는 인용이 아니라 인식"이라며 재차 사과를 요구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침이었다.
"어느 쪽을 낮게 볼 의도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차별발언은 발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립합니다. 문제는 발화 의도가 아니라 대표님의 희박한 장애인권감수성입니다. 차별을 차별이라고 전혀 느끼지 못하시는 그 감수성 말입니다.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대표님은 아직 제대로 된 사과도,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대로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시민의 존엄이 달린 일입니다."
'인재영입' 1호 최 교수의 뭉클함이 바래지 않으려면
인식은 변화는 멀고 21대 총선은 가깝다. 말은 가깝고 변화는 더디다. 7선 국회의원이자 여당 대표의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무의식'은 인권감수성 고양이란 인식보다 가벼운 말을 내뱉게 만든다. 최혜영 교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는 다선 의원의 제스처와 이 대표의 무의식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현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일면일지 모른다.
15일 자유한국당 박용찬 대변인이 이 대표를 비판하기 위해 내놓은 논평 역시 그러한 현주소의 반증이었다. 박 대변인은 "그리고 이 대표에게 분명히 말씀드린다"면서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논평을 마무리해 역시나 논란을 자처했다. 이 역시 정치인들의 '무의식' 혹은 '인식'에서 비롯된 내재된 차별적 표현이란 점에서 문제적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다. 비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다."
지난 12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전현직 국회의원 6명의 대상으로 접수된 장애인 비하발언에 관한 진정에 대해 피해자 특정의 불가를 이유로 각하했다. 다만 인권위는 국회의장, 정당대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에 대해 "혐오표현을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혐오표현 예방 조치 관련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다시 최혜영 교수의 선택으로 돌아가 보자. 전장연 등이 지적한 이해찬 대표의 '인식'과 신년행사 당시 최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민주당 다선 의원의 행동의 제스처 사이, 민주당은 그 간극을 과연 어떻게 메울 것인가.
최 교수를 비롯해 청년과 여성, 약자 등을 고려했다는 민주당의 '인재영입'이 지지 여부를 떠나 '진정성'이란 호평과 동시에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나온 이 대표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발언이, 그 '인식'의 발로가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최 교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던 다선 의원의 제스처를 온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를 테면, 최 교수가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척수장애인으로서 당사자성에 입각,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건 어떨까. 이어 해당 발언의 당사자인 이 대표가 일축이 아닌 최 교수의 조언을 겸허히 수용하고 향후 재발방지나 민주당 내 장애인 인권과 인권감수성의 제고 노력 방안을 발표하는 방식이 이어진다면 또 어떨까.
이 정도 제스처가, 실천이 이뤄질 때 최 교수 본인은 물론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마저도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논란을 확대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사가 아닐런지.
"지인이 건넨 걱정 중에 정치판은 험하다,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있다. 그런 걱정도 편견이다. 그런 말 자체가 정치 참여를 어렵게 한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감성팔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누군가가 굳이 그런 말을 전달하면서 오히려 그걸 공론화하고 깎아내리려 했다. 그래서 말했다. 감성팔이라도 괜찮다, 일할 수 있다면, 그래서 결과를 손에 쥘 수 있다면."
최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감성팔이'란 비판에도 현실 개선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스스로 고민할 때다. 자처한 논란과 비판을 잠재우고, 최 교수가 '감성팔이'란 비판 가운데서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인재영입'의 진심을 확인시키는 길을.
2020-01-16 09:33: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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