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주교도소 41명 합장묘 관 위에서 또다른 40여명의 뼈가 나왔다 - 한겨레
무연고 공동묘지 발굴 중 서류에 없는 주검 40여구 발견
41명 있어야 할 한 봉분에 2단으로 80여명 매장 확인
법무부, 검찰·경찰·국방부와 합동조사단 꾸려
“DNA 분석해 5·18 행불자 가족 정보와 비교할 방침”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에서 교도소 관리 명단에 없는 유골 40여기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진은 전날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유골을 수습해 안치한 상자의 모습. 광주/5·18부상자회 제공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광주광역시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분묘 개장 작업 도중 ‘정부의 어떤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주검 40여구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무연고자 합장묘 봉분을 연 뒤 그 아래 묻혀 있던 콘크리트 관 위로 40여구의 주검을 한꺼번에 묻은 뒤 다시 봉분을 만든 ‘이중 매장’의 형태였다. 발견된 주검 일부의 두개골에서 구멍이 발견돼, 정부는 5·18 당시 암매장된 행방불명자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긴급 합동조사단을 꾸렸다.
법무부는 20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안 북동쪽 무연고자 묘지를 개장하다 신원 미상의 주검 40여구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무연고자 묘지는 교도소 안에서 숨졌으나 연고가 없는 사람의 분묘로, 광주교도소에서 관리 중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주검은 교도소의 무연분묘 명단에 없는 사람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발굴된 주검은 통상의 합장묘와 다른 형태로 묻혀 있었다. 봉분 아래 땅속 1.5m 깊이에 묻혀 있던 콘크리트 관에는 서류상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41명의 무연고자가 묻혀 있었다. 하지만 그 콘크리트 관 위로 다시 주검 40여구가 흩어진 형태로 추가 발굴된 것이다. 이 뼈들은 지면에서 10㎝ 정도 아래에 묻혀 있었는데 이들 40여명은 무연분묘 명단 등 법무부 기록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처음에 봉분을 열었을 때 나온 40여명분의 뼈가 기록에 있는 이들로 알고 수거를 했다. 그런데 땅을 파다 보니 그 뼈 아래 다시 기록에 있는 41명분의 뼈가 든 콘크리트 관이 또 나왔다”고 발굴 당시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봉분은 1971년에 조성됐는데, 누구의 뼈인지는 모르지만 71년 이후에 누군가 무연고자 관 위에 40여명의 뼈를 추가로 묻는 것”이라며 “통상적으로 주검을 묻을 때 관 위에 다른 사람의 주검을 관도 없이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매장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런 비정상적인 매장이 당시 교도소 등 국가기관의 방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도소 사정을 잘 아는 한 당국자는 “봉분이 있는 장소는 교도소에서도 100여m 안으로 들어가는 외진 야산 쪽이지만, 경비가 삼엄한 곳으로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며 “누구도 이곳을 함부로 파서 열어보지 못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40여구의 무더기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법무부에서는 김오수 차관이 이날 광주 현장을 직접 방문해 상황을 관리했다. 법무부는 김 차관 주도로 경찰, 검찰, 국방부 유해발굴단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꾸렸다. 합동조사단은 곧장 검사 입회하에 주검 검시를 진행했으며, 육안 감식 결과 40여구의 유골 가운데 두개골 2개에서 구멍 뚫린 흔적이 발견됐다. 김후식 5·18부상자회 회장은 “대부분 탈골이 심하게 진행돼 뼈만 남아 있었다. 손상된 두개골이 많았고 두개골 2개에서는 지름 2㎝ 넘는 둥그런 구멍과 길이 10㎝가량 길게 팬 구멍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사단은 이 구멍이 총상으로 인한 것인지 등은 정밀 검사를 통해 확인할 방침이다. 조사단은 검시가 끝나는 대로 유전자(DNA) 분석을 위해 주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낼 예정이다. 조사단은 이어 국과수에서 채취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5·18기념재단에 보관된 희생자들의 유전자와 대조해 확인할 계획이다.
주검이 발굴된 장소는 법무부가 솔로몬 로(law)파크를 조성 중인 옛 광주교도소 터 10만6771㎡ 안의 무연고자 공동묘지 일원이다. 이곳은 광주교도소가 48년 전 동명동에서 문흥동으로 이전해 올 때 함께 옮겨왔고, 이후 교도소 안에서 숨진 가족 없는 주검들이 추가로 안장됐다.
반면, 5·18재단과 광주광역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5·18재단은 “2년 전 교도소의 암매장 추정지를 발굴할 때도 공동묘지는 대상에서 빠졌다. 발굴한 주검 대부분이 40년 이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될 만큼 형해화한 상태고, 암매장 추정자 16~17구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예단하기 이르다. 차분하게 대응하겠다”고 전했다. 조진태 5·18재단 상임이사는 “봉분을 쓰는 암매장이 있을까 싶다. 우선 발굴 현장을 자세히 확인하고, 5·18 관련성을 따져보겠다. 행방불명자는 유전자 정보를 이미 갖고 있는 만큼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 안팎에는 3공수여단 장교 265명과 사병 1261명이 주둔했다. 이들은 같은 해 5월21~22일 담양 쪽으로 가는 차량 등에 3차례 총격을 가해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했다. 5월단체는 군 기록을 통해 당시 민간인 희생자를 27~28명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5·18 직후 매장된 상태로 11구만 발견돼, 16~17구는 암매장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2017년 말~2018년 초 암매장 추정지로 지목된 북쪽 담장과 테니스장 부근을 땅속탐사레이더(GPR)로 확인했으나 주검을 찾지 못했다.
광주교도소는 1908년 동구 동명동에 광주감옥으로 문을 열었고, 1971년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했다. 이어 2015년 10월 시설이 낡고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북구 삼각동으로 다시 옮겨갔다. 문흥동 시설은 1998년 5·18사적 22호로 지정됐고, 법무부에서 인권과 민주를 기조로 공원을 조성 중이다.
황춘화 안관옥 최우리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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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0 12:03:3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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